이 시대에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굳이 전도를 해야 할까?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이 열린 세상에 아직도 있을까? 전도가 오늘 날과 같은 21세기에 꼭 필요한 개념인가? 바쁜 삶 속에서 전도를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나 자신이 복음을 취하고 그 가치를 누리고 살면 되지, 복음을 전해봐야 세상에서 조롱당하고 관계만 불편해지는데 굳이 전도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질문과 안일함에 빠져 있는 것이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아닐까? 베트남 선교지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신자들이 많다. 더욱이 타인에게 전도하는 행위 자체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어 공안들이 제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증인의 삶이 심각하게 위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신자들의 내면에서 삶을 인도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참 자유와 죄용서와 구원을 주는 절대 가치인 복음이 개인의 마음속에만 머물러 있어도 되는가? 성경에서는 분명히 전도의 당위성과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의 증인으로 살 것을 강조한다.
전도는 모든 성도의 본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택하신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이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신분이 달라진 자들이다.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는 것이 새로운 신분으로 격상된 신자들의 본분이다. 전도는 믿음의 표현이자 증거이고, 구원 받은 자, 은혜 받은 자의 본능이다. 눅10장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보내시면서 추수할 것이 많되 일꾼이 적다고 하셨다. 허다한 전도 대상자들이 곳곳에 아직도 많이 있다는 말이다. 2023년 현재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죄용서와 영생을 믿지 않는 자들이 세계 인구의 80% 이상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아직도 추수 할 것이 많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는 모두 복음에 빚진 자들이다, 빚진 자로서 세상을 품어야 한다.
그런데 세상을 변화시키려 할 때 세상적인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성경에도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와 같은 동태복수법이 나온다. 잘해주면 잘해주고 죽이면 죽이는 것은 율법의 세계이다. 이 율법적인 삶에 세상은 공평하다 하고 익숙하고 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을 강조하셨고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며 은혜와 사랑의 세계이다. 하나님께 이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면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의 복음을 전함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사막의 죄를 생각하면 전도의 필요성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사막에서 우물을 발견하고 물을 충분히 마신 사람이 그 우물이 어디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을 사막의 죄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막의 죄를 범해서야 되겠는가? 하나님은 전능자이신데 왜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들에게 전도하라 시키실까?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느니라” 이 고전1:21의 말씀에 의하면 믿는 자들의 전도를 통해 구원을 이뤄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 수 있다. 전도는 미련한 방법이지만 하나님이 계획하셨고 기뻐하시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전도를 통해 전해지는 말씀을 들어야 믿을 수 있다. 롬10:14-15절에 보면 이를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그렇다 전도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다. 천사에게 시키지 않고 하나님과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말씀인 복음을 구원받은 우리에게 부탁하셨다고 고후5:19에서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천사는 우리를 섬기는 자일뿐이며 천사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일이 전도이고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모여 즐거운 교제와 자신들 만을 위한 영성 훈련에만 몰두하는 현대 교인들에게 전도의 중요성의 각성이 시급하다. 전도와 선교가 외면된 영성은 좋은 영성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올바른 제자도를 축소시킨다. 전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우선 긴급성 때문이다. 급속한 인구증가, 불신자 증가, 무신론자 증가, 악령 수배자 증가, 참 교회와 참 성도의 감소, 교회의 세속화 및 물량주의, 교인 쟁탈전, 안일주의, 성도의 타락: 인본주의, 쾌락주의, 자기중심주의, 배금주의, 다원주의 등이 팽배한 이 시대를 볼 때 참다운 복음 전파의 긴급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죄악이 관영하고 그 흉포성이 날로 더해간다. 죄가 날마다 늘어가고 죄를 즐기고 정당화하는 시대이다. 이들에겐 초월적 복음의 능력과 말씀의 진리만이 효과가 있고 죄의 길에서 돌이킬 수 있다. 종말의 임박성도 전도를 중요시 하는 이유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들이 복음으로 세상을 깨우고 말씀으로 경고하여 회심과 영적인 각성을 이루게 해야 한다. 미련해 보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전도라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이런 일을 이뤄 가시기 때문이다. 전도는 이렇게 신자들의 중요한 사명이자 본분이다. 하나님의 명령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유언이다. 또한 성령께서 임하시는 이유이자 목적이며 교회의 존재 이유이고 새로운 피조물의 사명이다.
모든 일에는 목적과 목표가 있다. 전도에도 목적과 목표가 있다. 전도 목적은 우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다.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11의 이 구절이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옴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알려주고 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 돌림이다, 그러므로 많이 전도하면 할수록 하나님께 큰 영광과 기쁨이 된다. 전도하는 둘째 목적은 한 생명을 구원함에 있다.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이다.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영혼이 죽은 자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풍성한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 전도하는 셋째 목적은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다. 가정구원, 민족구원, 모든 족속 구원이 그 목적이다. 우주 만물의 구원 역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데 만물도 구원과 회복을 소원하고 있다. 전도의 목표에서 양적인 목표는 무제한이고 불신자가 없을 때까지 전도해야 한다. 전도의 시간적 목표는 우리가 건강할 동안, 목숨이 다할 때까지이며 주님의 재림시까지이다. 지역적 목표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이다. 질적인 목표는 중생, 구원의 확신, 성령 충만, 확신 있는 증인,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할 때까지이다. 결국 전도의 최종 목표는 헌신된 그리스도인 즉 제자를 만드는 데 있다. 그들이 가져야 할 최종적인 자격은 ‘증인’이다. 전도자로서 또 다른 전도자를 양육하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전도의 목표는 달성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마10:32-33).
안필립 목사
예수교 대한성결교회
베트남 선교사, 교회개척, 고아원
마약자 재활원 & 신학교 운영
2011년 –현재까지